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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연금 평가액 180조 감소, 코스피 안전판이 사라졌다

binari 2026. 10. 23. 00:21

180조 원. 6월 고점 이후 국민연금 국내 주식 평가액이 줄어든 규모를 제가 지금 코스피 수준으로 대략 계산해본 숫자입니다. 뉴스는 "국민연금이 돈을 잃었다"에 집중하지만, 저는 그보다 더 본질적인 문제가 있다고 봅니다. 지금 코스피를 받쳐줄 매수 주체 자체가 사라졌다는 점입니다. 저도 그때 포모를 못 이기고 결국 들어갔다가 큰 손실을 봤기 때문에, 이 문제가 숫자 이상으로 느껴집니다.



코스피 9,000에서 멈춘 원칙

코스피는 6월 18일 사상 처음 9,000을 넘겨 9,063으로 마감했습니다. 그때 국민연금은 가장 큰 수혜자였습니다. 작년 말 263조 원이던 국내 주식 평가액은 6월 말 543조 원까지 불었고, 상반기 국내 주식 수익률은 100%를 넘었으며 기금 전체 수익률도 27%였습니다. "연금 고갈 시점이 크게 늦춰졌다"는 말이 정말 많이 돌았고, 저도 솔직히 그 분위기에 동조했습니다.

여기서 짚어야 할 게 리밸런싱입니다. 미리 정해둔 자산 비율을 지키려고, 비중이 커진 자산은 팔고 작아진 자산은 사는 작업입니다. '비쌀 때 팔고 쌀 때 산다'는 원칙을 기계적으로 지키는 장치입니다. 그런데 국민연금은 1월 기금운용위원회에서 국내 주식 리밸런싱을 6월 말까지 미루기로 했고, 5월 28일에는 국내 주식 목표 비중을 14.9%에서 20.8%로 크게 올렸습니다. 6월 말 실제 국내 주식 비중은 29.13%였습니다. 목표를 한참 넘은 상태에서 고점을 맞은 겁니다.

그리고 7월 한 달 국내 주식 수익률은 -22.99%였습니다. 평가액이 약 124조 원 줄었습니다. 물론 이건 실제로 팔아서 확정된 손실이 아니라 평가 손실이고, 연초와 비교하면 아직 늘어난 상태입니다. 아쉬운 건 원칙대로 조금씩 덜어냈다면 상승분 일부를 확정할 수 있었다는 점입니다.

김성주 국민연금공단 이사장은 10월 14일 국정감사에서 "1월에 유예하지 않았다면 매일 8천억 원 이상, 코스피 거래대금의 10% 이상을 던져야 했을 것"이라며 시장 충격을 막기 위한 판단이었다고 설명했습니다. 그 논리는 이해합니다. 그래도 저는 하루 2,000억 원 수준으로라도 원칙대로 조금씩 덜어냈다면 지금처럼 손발이 묶인 상태는 아니었을 거라고 봅니다.

 

받아줄 사람이 사라진 시장

증시는 결국 수급, 즉 사려는 쪽과 팔려는 쪽의 싸움입니다. 올해 코스피가 오르는 동안에도 외국인은 꾸준히 팔았습니다. 8월 말까지만 169조 원을 순매도했고, 10월 들어서도 15일까지 17조 8천억 원을 더 팔았습니다. 그 대부분이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였습니다.

하반기에 이 물량을 받아낸 건 두 회사의 자사주 매입이었습니다. 삼성전자는 8월 24일부터 10월 6일까지 약 15조 원, SK하이닉스는 10월 21일까지 약 40조 원을 사들였습니다. 한국일보 집계로 SK하이닉스 매입 기간 동안 자사주 매입이 잡히는 '기타법인'은 코스피에서 약 52조 9천억 원을 순매수했습니다. 같은 기간 외국인은 약 46조 4천억 원, 개인은 약 11조 2천억 원을 순매도했습니다. 외국인이 판 물량을 회사가 거의 그대로 받아준 셈입니다.

그 사이 연기금은 받아주는 쪽이 될 수 없었습니다. 국내 주식 비중이 이미 목표를 훌쩍 넘어 있으니, 주가가 떨어져도 사줄 여력이 없습니다. 예전엔 외국인이 팔 때 연기금이 받쳐주는 '안전판'이 있었는데, 그 역할이 사라진 겁니다.

자사주 매입이 끝나자 결과는 바로 나왔습니다. 삼성전자는 매입이 끝난 뒤 26만 8,500원에서 21만 4,500원으로 20% 넘게 떨어졌고, 코스피는 10월 들어 5,500선까지 밀렸습니다. 투자자 예탁금도 10월 21일 89조 6천억 원으로 1월 이후 처음 90조 원 아래로 내려갔습니다. 시장에 대기 중인 돈마저 줄고 있다는 뜻입니다.

저도 그때 포모를 참다 참다 결국 들어갔는데, 지금 보면 외국인 매도 물량을 고점 근처에서 받아준 꼴이 됐습니다. 외국인은 회사가 사주는 동안 차근차근 빠져나갔습니다.

글로벌 쪽도 돈이 빠듯합니다. 메타는 2분기 매출이 28% 늘었지만 AI 설비투자에 약 310억 달러를 쓰면서 잉여현금흐름(번 현금에서 투자를 빼고 남는 돈)이 1년 전보다 91% 줄었습니다. 알파벳은 그 직전 주에 사상 처음으로 잉여현금흐름이 마이너스가 됐습니다. 빅테크가 번 돈을 거의 전부 AI 인프라에 쏟아붓고 있다는 뜻입니다.

업데이트(10월 26일): 이 글을 쓴 뒤 나온 한국거래소 집계 보도를 보니, 연기금은 올해 1~9월 국내 주식을 9조 원 넘게 순매도했습니다. 상반기에도 연기금은 외국인 물량을 사서 받아준 게 아니라 '팔지 않고 버틴' 쪽이었던 셈입니다.

 

"대형 악재 뒤엔 시장이 회복한다"는 말은 틀리지 않습니다. 다만 그건 받아줄 매수 주체가 있을 때 이야기입니다. 그래서 저는 지금은 무리하게 물타기할 때가 아니라, 수급이 바뀌는 신호를 확인하고 움직일 때라고 봅니다. 당장 볼 변수는 SK하이닉스가 10월 28일 3분기 실적과 함께 내놓을 주주환원 방안, 그리고 삼성전자의 배당과 추가 환원 규모입니다. 이게 새 매수 주체가 될 수 있는지가 관건입니다. 결과를 알고 나면 다 쉬워 보입니다. "9,000에서 팔았으면 됐잖아"라고 지금은 쉽게 말할 수 있지만, 그때는 저를 포함해 대부분이 더 오를 거라고 믿었습니다. 특정 종목 추천이 아닌 정보 공유 글입니다.

 

국민연금 수치는 경향신문·파이낸셜뉴스 인용 보도, 국감 발언은 SBS Biz(10.14), 메타 실적은 The Next Web(7.29)을 참고했습니다. 이 주제를 처음 접한 건 이 영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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