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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보비율 면제 몇 시간 전에 판 주식, 빚이 판단을 빼앗는 방식

binari 2026. 11. 6. 20:56

몇 시간만 기다렸다면 어땠을까요. 11월 6일 아침, 서킷브레이커가 풀리자마자 주식 일부를 팔아 신용을 갚았습니다. 전날 증권사에서 담보가 부족하니 이날까지 채우라는 연락을 받았기 때문입니다. 꽤 큰 손실을 확정하고 겨우 숨을 돌렸는데, 점심 무렵 정부가 신용융자 담보비율 유지 의무를 3개월간 면제한다고 발표했습니다. 곧이어 제가 쓰는 증권사 앱에는 11월 5일 담보 부족분부터 소급해서 적용한다는 공지가 떴습니다. 오전에 서둘러 판 게 결과적으로는 하지 않아도 됐던 매도였던 겁니다. 그리고 밤에는 미국 프리장이 반등했습니다.



어제의 원칙이 오늘은 통하지 않았다

어제 글에서 저는 "결과 대신 이유를 본다, 근거가 바뀌지 않으면 팔지 않는다"고 썼습니다. 민주당 의회는 내년에야 문을 열고, 백악관에는 트럼프가 있으니 AI 규제 공포는 노이즈에 가깝다고 판단했습니다. 그 판단은 하루 만에 바뀌지 않았습니다. 바뀐 건 계좌의 담보비율이었습니다.

빌린 돈으로 산 주식은 주가가 일정 선 아래로 내려가면 내가 노이즈라고 믿든 말든 정해진 날까지 돈을 채워야 합니다. 못 채우면 증권사가 다음 장이 열리자마자 대신 팝니다. 이날 코스피는 장 시작 3분 만에 8%대 급락으로 서킷브레이커가 걸렸고, 장중 4,911까지 밀렸다가 6.02% 내린 5,059.69에 마감했습니다. 그 아침에 제가 고를 수 있었던 건 "언제 팔까"가 아니라 "증권사가 팔게 둘까, 내가 팔까"뿐이었습니다.

이번에 몸으로 배운 건, 빚이 끼면 판단의 주인이 바뀐다는 것입니다. 아무리 근거를 세워도 매도 시점은 담보비율과 날짜가 정합니다. 어제 세운 원칙은 틀리지 않았지만, 그 원칙을 지킬 자격이 저에게는 없었습니다. 담보비율이 어떻게 계산되고 반대매매가 어떤 순서로 나가는지는 네이버 블로그에 표로 정리해 두었습니다.

 

면제는 옳은 정책일까

솔직히 처음엔 짜증부터 났습니다. 아침에 서킷브레이커가 걸릴 만큼 급박했는데 대책은 점심에 나왔고, 시행일은 다음 주 월요일이었으니까요. 다행히 제 증권사는 소급해 줬지만, 그 공지가 뜨기 전까지는 반대매매가 그대로 나갈 수 있었으니 오전에 판 게 틀린 선택이었다고 하기도 어렵습니다. 그래서 더 허탈했습니다.

한 발 떨어져서 보면 정책 자체는 이유가 있습니다. 반대매매 물량은 다음 날 아침 시장가로 한꺼번에 쏟아지고, 그 매물이 주가를 더 끌어내려 또 다른 계좌의 담보비율을 깨뜨립니다. 이 도미노를 끊으려는 조치이고, 2022년 7월에도 같은 3개월 면제를 했다가 연말까지 연장한 전례가 있습니다. 급락장에서 강제 매도의 연쇄를 막는 건 신용을 안 쓴 투자자에게도 도움이 됩니다.

반대쪽 목소리도 분명히 있습니다. 빚을 내 투자한 사람의 손실 위험을 정부가 대신 미뤄주는 셈이라는 비판입니다. 2022년 청년층 빚투 손실을 채무조정해 줄 때도 "수익은 개인이 갖고 손실은 나라가 떠안느냐"는 모럴해저드 논란이 컸습니다. 형평성 문제도 있습니다. 저처럼 기한을 지키려고 먼저 판 사람과 버틴 사람 사이에 결과가 갈렸고, 그 차이를 만든 건 판단이 아니라 증권사 공지가 뜬 시각이었습니다. 게다가 3개월이 지나면 기준은 다시 원래대로 돌아오니, 문제를 없앤다기보다 뒤로 미루는 조치라는 지적도 맞는 말입니다.

저는 그 사이 어딘가에 서 있습니다. 도미노를 막는 건 필요했다고 생각합니다. 다만 이 면제가 "빚을 내도 결국 정부가 받쳐준다"는 신호로 읽히면, 다음 하락장에는 더 큰 빚이 쌓여 있을 겁니다.

 

안도와 허탈 사이에서 내린 결론

면제 발표를 봤을 때 "살았다"는 안도감과 "신용은 다시 하지 말자"는 생각이 동시에 들었습니다. 이 하루를 지나고 나니 신용매매는 제 그릇이 아니라는 게 분명해졌습니다. 같은 하락에도 빚이 있으면 손실은 몇 배로 커지고, 무엇보다 내가 정한 원칙대로 버틸 수가 없습니다.

전에 「익절은 언제나 옳다?」 글에서 "버틸 수 있는 비중"을 이야기했는데, 그 비중 안에 빚도 넣어 계산해야 했습니다. 공포가 매도 버튼을 누르게 만드는 과정은 패닉셀 글에서 다뤘는데, 이번엔 공포가 아니라 날짜가 팔았습니다. 그 날짜를 정한 건 결국 제가 빌린 돈이었고요. 하루 전 판단 과정은 어제 글에 남아 있습니다.

 

면제 기간은 버틸 시간이라기보다 빚을 줄여 둘 시간이라고 생각합니다. 손실은 아프지만, 다시는 날짜가 대신 팔게 두지 않겠다는 다짐을 얻은 값이라고 생각하기로 했습니다. 특정 종목이나 매매를 권하는 글이 아닌 개인 경험과 생각을 적은 글입니다.

 

면제 발표 내용은 디지털데일리와 뉴스1(2026.11.6), 11월 6일 지수는 한국거래소 정규장 종가, 2022년 빚투 채무조정 논란은 MTN(2022.7.21)을 참고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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