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기 영업이익 107조 원을 낸 회사의 주가가 왜 하루 만에 6% 가까이 빠졌을까요? 10월 29일 삼성전자가 3분기 확정실적을 발표한 날 이야기입니다. 장 초반 3% 가까이 오르던 주가는 오전 10시 컨퍼런스콜이 시작되자 방향을 틀어 장중 6% 가까이 밀렸고, 결국 5.92% 내린 23만 500원에 마감했습니다. 전날 SK하이닉스 실적 발표의 열기가 채 식기도 전이라 이건 정말 예상 밖이었습니다. 처음엔 컨퍼런스콜 실망 정도로만 생각했는데, 들여다보니 그 뒤에 훨씬 구조적인 이야기가 있었습니다.
시장이 기다린 건 숫자가 아니라 약속이었다

하루 전인 10월 28일 SK하이닉스 발표는 축제 분위기였습니다. 3분기 매출 104조 6,155억 원, 영업이익 83조 3,338억 원으로 영업이익률이 79.7%에 달했습니다. 여기에 20조 원 규모의 자사주 추가 매입을 포함해 총 100조 원의 주주환원 계획까지 내놨습니다. 그 흐름을 지켜보면서 시장의 기대가 자연스럽게 다음 날 삼성전자로 옮겨가는 게 느껴졌습니다.
삼성전자 숫자도 분명 역대급이었습니다. 매출 195조 3,000억 원, 영업이익 107조 4,000억 원으로 영업이익이 1년 전보다 783% 늘었습니다. 3분기 배당도 주당 4,601원, 총 30조 원으로 정했습니다. 그런데 컨퍼런스콜이 끝나자 분위기가 돌변했습니다. 컨퍼런스콜은 기업이 기관 투자자와 애널리스트에게 실적과 앞으로의 계획을 직접 설명하는 자리인데, 시장이 듣고 싶었던 건 바로 그 '계획'이었습니다.
삼성전자가 밝힌 올해 주주환원 규모는 90조~110조 원입니다. 이번 배당 30조 원을 포함해 집행했거나 확정한 금액이 약 35조 원이라, 남은 재원은 55조~75조 원입니다. 이 돈을 배당과 자사주 매입·소각에 쓰겠다는 방향은 나왔지만, 구체적인 규모와 일정은 내년 1월 말 이사회에서 정하겠다는 기존 입장을 반복했습니다. 새로운 숫자가 없었던 겁니다. 시장은 숫자 자체보다 확신에 반응하는데, 이번엔 그 확신이 없었습니다. 같은 날 외국인은 SK하이닉스를 4,483억 원 사들이고 삼성전자는 1,394억 원 팔았습니다.
보통주를 마음껏 태울 수 없는 이유
처음엔 저도 컨퍼런스콜 하나의 문제로 봤습니다. 그런데 좀 더 들여다보니 삼성전자에만 있는 제약이 하나 보였습니다. 흔히 금산분리라고 부르는 규정인데, 정확히는 금융산업구조개선법(금산법) 24조입니다. 같은 그룹 금융회사들이 계열 비금융회사 지분을 합쳐 10% 넘게 가지려면 금융위원회 승인을 받아야 한다는 내용입니다. 금융회사가 고객 돈으로 산업회사를 지배하면서 금융과 산업의 위험이 서로 번지는 걸 막자는 취지입니다.
삼성생명(8.51%)과 삼성화재(1.49%)는 삼성전자 보통주를 합쳐 정확히 10% 들고 있습니다. 여기서 자사주 소각이 걸립니다. 자사주 소각은 회사가 사들인 자기 주식을 없애 전체 주식 수를 줄이는 것이라, 기존 주주의 지분율이 저절로 올라갑니다. 보통주를 소각하면 두 보험사 지분이 10%를 넘게 되고, 넘는 만큼은 팔아야 합니다. 실제로 올해 상반기 소각 때도 두 회사는 1조 원이 넘는 삼성전자 주식을 정리했습니다. 이 구조를 처음 알았을 때 좀 아찔했습니다. 이런 게 있었구나 싶었거든요.
그러니 소각을 아예 못 하는 건 아닙니다. 다만 보통주를 크게 태울수록 보험사가 계속 지분을 내다 팔아야 하고, 그만큼 그룹이 삼성전자를 쥐는 힘도 약해집니다. 이번 컨퍼런스콜에서 삼성전자가 남은 재원으로 자사주를 살 때 우선주 비중을 늘릴 수 있다고 한 것도 이 맥락에서 읽힙니다. 우선주는 의결권이 없어 소각해도 보험사의 보통주 지분율이 올라가지 않기 때문입니다. 보통주보다 20% 넘게 싼 우선주 할인을 줄이겠다는 명분도 있습니다. 우선주가 왜 싸게 거래되는지는 우선주 괴리율 글에서 따로 정리했습니다.
물론 반대 시각도 있습니다. 이 규정이 있어서 오히려 보험 가입자 돈이 특정 계열사에 과도하게 묶이는 걸 막는다는 점, 그리고 보통주 소각 대신 우선주 소각이나 배당을 늘리는 것도 결국 주주에게 돈이 돌아가는 방식이라는 점입니다. 다만 보통주 대규모 소각을 기대했던 투자자, 특히 보통주의 46%를 가진 외국인에겐 아쉬운 답이었던 건 분명해 보입니다.
같은 메모리 호황, 다른 손익계산서
이번 실적 시즌에서 가장 크게 느낀 건 두 회사가 들고 있는 무기가 애초에 다르다는 점이었습니다.
| 3분기 | SK하이닉스 | 삼성전자 |
| 영업이익 | 83조 3,338억 원(이익률 79.7%) | 107조 4,000억 원(이익률 55%) |
| 사업 구성 | 메모리 중심, HBM 비중 높음 | 반도체 106조 5,000억 원, 스마트폰·가전(DX) 8,000억 원 적자 |
| 추가 주주환원 | 추가 환원 60조 원(자사주 20조 원 포함), 실적 발표와 함께 공개 | 55조~75조 원, 세부안은 내년 1월 말 |
SK하이닉스는 AI 가속기에 들어가는 고대역폭 메모리(HBM)에 집중하면서, 자사주 소각이라는 카드도 비교적 자유롭게 쓸 수 있습니다. 반면 삼성전자는 메모리만 하는 회사가 아닙니다. 스마트폰, TV, 가전, 파운드리까지 하다 보니 메모리 값이 오르면 반도체는 웃지만 메모리를 사다 쓰는 스마트폰·가전 쪽은 원가 부담이 커지는 구조입니다. 실제로 이번 분기 반도체 부문만 106조 5,000억 원을 벌었고, 완제품을 맡은 DX 부문은 8,000억 원 적자였습니다.
그래서 시장에선 두 시각이 함께 나옵니다. "사업이 분산돼 있어 반도체에 순수하게 베팅하기 어렵다"는 불만과, "그래서 변동성이 덜하고 배당이 꾸준하다"는 평가입니다. 저는 이게 정답이 없는 문제라고 봅니다. 투자 성향에 따라 답이 갈리기 때문입니다. 제 경우엔 둘 중 하나만 고집하기보다 나눠 담았을 때가 결과적으로 덜 고통스러웠습니다.
10월 29일 하루를 정리하며 배운 건, 시장은 숫자보다 숫자 뒤의 구조를 먼저 읽는다는 점입니다. 역대급 실적도 기대 앞에서는 힘을 못 쓸 수 있고, 주주환원 의지도 법과 지배구조라는 틀 안에서만 움직일 수 있습니다. 이제 관전 포인트는 내년 1월 말입니다. 남은 55조~75조 원 가운데 보통주와 우선주 소각이 각각 얼마나 되는지, 그리고 그 사이 보험사 지분 문제를 어떻게 풀어낼지가 삼성전자 주가의 다음 방향을 정할 가능성이 큽니다. 특정 종목 추천이 아닌 정보 공유 글입니다.
실적은 SK하이닉스 뉴스룸(10.28)과 이투데이(10.29), 주주환원과 우선주 방침은 서울경제와 한국일보(10.29), 주가와 외국인 매매는 한국경제(10.29), 보험사 지분 매각은 딜사이트(2026.3.18)를 참고했습니다. 금산법 구조를 처음 짚어준 건 이 영상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