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일본 직구로 물건을 몇 가지 샀는데, 국내 제품보다 오히려 더 싸게 살 수 있어서 순간 당황했습니다. 좋은 일 같기도 한데, 생각해보니 우리 수출 기업들한테는 꽤 불리한 신호일 수 있겠다 싶더라고요. 7월 말 엔화는 달러당 164엔 턱밑까지 밀려 약 40년 만의 최저치를 찍었고, 결국 미국까지 직접 외환시장에 들어왔습니다. 그리고 이번 주에는 미국 연준(9월 16일)과 일본은행(9월 18일)이 나란히 금리를 올렸습니다. 이번 엔저가 왜 이렇게까지 번졌는지, 숫자부터 차근차근 정리해봤습니다.
숫자로 먼저 보는 이번 엔저
| 항목 | 수치 (시점) |
| 엔/달러 최저점 | 164엔 근접 (7월 말, 1986년 이후 최저) |
| 미일 공동 개입 | 7월 30일, 2011년 이후 15년 만 |
| 개입 이후 흐름 | 157엔대 → 8월 28일 160.2엔 재돌파 → 9월 3일 155엔대 |
| 기준금리 | 미국 3.75~4.00% / 일본 1.25% / 한국 3.00% |
| 일본 식품 물가 | 6월 +3.2%, 7월 +3.5% (전년 대비) |
| 일본 실질임금 | 7월 +2.4%, 7개월 연속 증가 |
| 일본 정부부채 | GDP의 2배 이상 (IMF 기준, 주요국 최고 수준) |
2022년 초 달러당 115엔 안팎이던 엔화가 164엔 가까이 갔으니, 엔화 가치는 2년 반 사이 30% 가까이 떨어진 셈입니다. 단순한 환율 문제가 아니라 구조적인 문제가 오랫동안 쌓인 결과라고 봅니다.
엔저가 멈추지 않는 이유 세 가지
① 좁혀지지 않는 미일 금리 차
가장 직접적인 원인은 기준금리 차이입니다. 지금 미국 기준금리는 3.75~4.00%, 일본은 1.25%로 2.5%p 넘게 벌어져 있습니다. 기준금리는 중앙은행이 금융기관과 거래할 때 기준이 되는 금리로, 높을수록 그 나라 통화를 들고 있을 때 받는 이자가 커집니다. 투자자 입장에서는 이자가 낮은 엔화를 팔고 이자가 높은 달러를 사는 게 당연히 유리하죠.
그래서 엔화를 싸게 빌려 금리가 높은 곳에 넣는 엔캐리 트레이드가 계속됩니다. 이 거래가 쌓일수록 엔화를 파는 힘도 커집니다. 일본은행이 이번에 금리를 올렸지만, 같은 주에 연준도 올려 버리는 바람에 금리 차는 크게 줄지 않았습니다.
② 유가와 달러 강세
7월에 미국과 이란의 충돌 우려가 다시 커지면서 안전자산인 달러로 돈이 몰렸습니다. 일본은 원유 대부분을 수입하기 때문에 유가가 오르면 무역적자가 커지고, 그만큼 엔화를 팔고 달러를 사야 하는 수요도 늘어납니다. 엔저가 수입 물가를 올리고, 수입 물가가 다시 엔화를 누르는 구조입니다.
③ 정부와 중앙은행의 엇박자
다카이치 정부는 감세와 재정 지출 확대로 경기를 띄우려 합니다. 식료품 소비세를 2027년 4월부터 1%로 낮추겠다는 안도 그 연장선입니다. 반면 일본은행은 금리를 올려 돈을 거두려 합니다. 한쪽은 돈을 풀고 다른 쪽은 거두는 셈이라, 시장은 일본 재정이 버틸 수 있느냐를 의심하고 있습니다. 실제로 9월 초 일본 10년물 국채금리가 1996년 이후 처음으로 3%대에 올라섰습니다.
솔직히 제가 잘못 알고 있던 것
"그러면 금리를 빨리 올리면 되지 않나?" 처음엔 저도 그렇게 생각했고, 동시에 일본은 금리를 올리고 싶어도 못 올린다고 믿었습니다. 그런데 자료를 다시 찾아보니 절반만 맞는 이야기였습니다.
일본은행은 올해만 6월(1.0%)과 9월(1.25%) 두 번 금리를 올렸고, 1995년 이후 가장 높은 수준까지 왔습니다. 제가 걱정했던 실질임금도 올해 들어서는 플러스로 돌아섰습니다. 올해 춘투 임금 인상률이 5%를 넘었고, 7월 실질임금은 1년 전보다 2.4% 올라 7개월 연속 증가했습니다. 2025년 내내 실질임금이 줄던 것과는 분위기가 꽤 다릅니다.
그럼에도 제가 여전히 '구조적 문제'라고 보는 이유는 두 가지입니다. 첫째, 국가부채가 GDP의 두 배를 넘는 상황에서는 금리를 올릴 때마다 정부의 이자 부담이 눈덩이처럼 커집니다. 그래서 일본은행은 올리긴 올리되 미국을 따라잡을 만큼 빠르게 올리기는 어렵습니다. 둘째, 체감 물가입니다. 전체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5월 1.7%로 높지 않지만, 식품 물가는 6월 3.2%, 7월 3.5%로 오히려 오름폭을 키웠습니다. 9월에만 식품·음료 4,500개 넘는 품목의 가격이 오를 예정이라는 조사도 나왔습니다. 임금이 올라도 장바구니가 더 빨리 오르면 사람들이 느끼는 살림살이는 나아지지 않습니다.
미국까지 나선 게 왜 큰일인가
7월 30일 미국과 일본이 함께 엔화를 사들였습니다. 두 나라가 함께 외환시장에 개입한 건 2011년 동일본 대지진 이후 15년 만인데, 그때는 너무 오른 엔화를 누르는 개입이었습니다. 미국이 엔화를 떠받치려고 산 건 1998년 아시아 외환위기 이후 28년 만입니다. 금융위기나 대형 재해가 아니면 보기 힘든 일이라, 그만큼 이번 엔저가 심각했다는 뜻으로 읽힙니다.
스콧 베선트 미국 재무장관은 8월 초 인터뷰에서 엔화 약세가 아시아 각국의 경쟁적 통화 절하로 번질 수 있다고 우려했습니다. 1990년대 아시아 외환위기 때도 엔화 급락이 방아쇠 중 하나였다는 말까지 꺼냈고, 엔저 때문에 한국 원화도 함께 약해지고 있다고 직접 언급했습니다.
다만 개입 효과는 오래가지 않았습니다. 일본 정부가 한 달 동안 역대 최대 규모로 엔화를 사들였는데도, 8월 말 엔화는 다시 160엔대로 밀렸습니다. 결국 개입은 시간을 버는 것일 뿐, 금리 차와 재정 신뢰라는 근본 원인이 바뀌지 않으면 흐름을 돌리기 어렵다는 걸 보여준 셈입니다.
한국에는 어떤 영향이 있을까
일본 제품을 직구하다가 국내 비슷한 제품보다 더 싼 걸 실제로 봤을 때, "싸다"는 느낌보다 "이게 우리 기업한테 문제 아닌가"라는 생각이 먼저 들었습니다.
한국과 일본은 자동차, 철강, 기계, 가전 등 여러 분야에서 해외 시장을 두고 경쟁합니다. 엔화가 싸지면 일본 수출품의 달러 가격이 내려가고, 품질이 비슷하다면 한국 제품은 가격 경쟁력에서 밀립니다. 그나마 올해는 반도체 수출이 워낙 좋아서 한국은행이 성장률 전망을 3.3%로 올리고 기준금리도 7월과 8월 두 달 연속 올려 3.00%가 됐지만, 반도체를 뺀 업종에서는 엔저 부담이 조용히 쌓이고 있다고 봅니다.
원화도 안심할 상황은 아닙니다. 미국 재무장관이 직접 원화 변동성을 언급할 만큼, 엔화가 흔들리면 원화도 같이 흔들립니다. 반대로 일본은행이 예상보다 빠르게 금리를 올려 엔화가 급반등하면, 엔화를 빌려 투자했던 돈이 한꺼번에 빠져나가면서 2024년 8월처럼 금융시장이 크게 출렁일 수도 있습니다. 어느 방향이든 변동성이 크다는 게 지금 상황의 핵심입니다.
직구하는 입장에서 덧붙이면, 엔화가 싼 지금이 유리한 건 맞지만 품목별로 차이가 큽니다. 제가 직접 비교해보니 품목별로 차이가 꽤 크게 났고, 관세와 배송비까지 더해서 따져봐야 합니다. 환율은 개입 한 번에 며칠 사이 5엔 넘게 움직이기도 하니, 큰 금액이라면 결제 시점의 환율을 꼭 확인하시길 권합니다.
엔저는 언제 멈출까
솔직히 저도 답은 모르겠습니다. 다만 시장에서는 일본은행의 인상 간격이 반년에서 3개월 정도로 빨라질 수 있다고 보고 있어서, 10월이나 12월에 한 번 더 올린다면 미일 금리 차가 의미 있게 좁혀질 겁니다. 반대로 이란 문제로 유가가 다시 뛰면 일본의 무역적자가 커지면서 엔화는 또 밀릴 수 있습니다. 저는 당분간 달러당 160엔선을 기준으로 보려고 합니다. 이 선을 다시 넘으면 추가 개입 가능성이 커지기 때문입니다.
일본의 엔저는 단순히 "일본 돈이 싸졌다"는 이야기가 아니라, 미일 금리 차와 국가부채, 정부와 중앙은행의 엇박자가 뒤엉킨 문제라고 봅니다. 일본 정부가 재정 건전성에 대한 믿음을 되살리지 못하는 한, 외환 개입만으로 흐름을 바꾸기는 어려울 겁니다. 제가 가장 걱정하는 건 한국에 미치는 간접 영향입니다. 당장 뉴스 1면에 나오지 않더라도, 조용히 지켜봐야 할 변수라고 생각합니다.
2026년 10월 24일 업데이트
글을 올린 뒤 한 달 동안 엔화는 9월 말 달러당 157엔 안팎에서 움직였습니다. 일본은행 회의에서는 물가가 목표치를 웃도는 데 대한 경계감이 나왔고, 10월에 또 금리를 올릴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오고 있습니다. 미국 30년물 국채금리가 9월 말 2002년 이후 최고치를 찍으면서 달러 강세 압력도 여전해서, 엔저가 끝났다고 보기는 아직 이르다는 생각입니다.
숫자는 일본 재무성(공동 개입 발표 8월 3일, JGB 투자자 자료 8월), 일본은행·연준·한국은행 금리 결정, 일본 후생노동성 근로통계(9월 8일 발표), 총무성 소비자물가, 제국데이터뱅크 조사를 참고했습니다. 공동 개입 배경은 이 영상을 보고 처음 관심을 갖게 됐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