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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락 다음 날 주식 앱을 안 열었다, 뇌가 멈춘 하루

binari 2026. 11. 7. 23:20

토요일 밤 11시, 이 글을 쓰려고 자리에 앉아서야 알았습니다. 오늘 하루 주식 앱을 한 번도 열지 않았다는 걸요. 결심하고 참은 건 아니었습니다. 어쩌다 보니 그렇게 됐습니다. 목요일엔 반도체가 무너졌고, 금요일 아침엔 서킷브레이커가 풀리자마자 신용을 갚으려고 주식을 팔았고, 점심엔 담보비율 면제 발표를, 밤엔 미국 프리장이 반등하는 걸 봤습니다. 그 이틀을 지나고 나니 뇌가 그냥 멈춰 버린 것 같습니다.



주식 근처에도 가지 않은 토요일

금요일 저녁에 한잔하고 들어와서 그대로 하루 종일 잤습니다. 일어나서는 글감을 찾고, 글을 쓰고, 미뤄 둔 재무 정리를 했습니다. 앞으로 자산을 어떻게 키워 나갈지도 이것저것 생각해 봤습니다. 그런데 그 사이 주식은 아예 떠오르지도 않았습니다. 금요일 밤 프리장이 반등하는 걸 보며 잠들었으니 미국 본장이 어떻게 끝났는지 궁금할 법도 한데, 그 생각조차 들지 않았습니다.

돌아보면 신기한 일입니다. 평소라면 눈 뜨자마자 미국장부터 확인했을 텐데, 오늘은 그 습관이 통째로 빠졌습니다. 시세를 안 보니 오히려 "앞으로 어떻게 할까" 같은 긴 질문을 붙잡을 여유가 생겼습니다. 숫자가 분 단위로 바뀌는 화면 앞에서는 그런 질문을 할 틈이 없었으니까요.

하나 더 떠오른 건, 이렇게 하루를 통째로 잊을 수 있다는 것 자체가 빚 없는 계좌의 특권이라는 점입니다. 담보비율이 걸려 있었다면 마음 편히 잠들지도 못했을 겁니다. 빚이 판단을 어떻게 빼앗는지는 어제 글에 적어 두었습니다.

 

자주 볼수록 더 자주 아프다

앱을 안 본 하루가 왜 이렇게 편했는지 궁금해서 찾아보다가, 나심 탈레브가 『행운에 속지 마라』에서 든 예시를 다시 꺼냈습니다. 1년에 평균 15%를 벌고 변동성이 10%인 꽤 괜찮은 투자자가 있다고 할 때, 계좌를 확인하는 주기에 따라 "오늘은 플러스네"를 볼 확률이 이렇게 달라집니다.

확인 주기 플러스로 보일 확률
1년에 한 번 약 93%
분기에 한 번 약 77%
한 달에 한 번 약 67%
매일 약 54%
매초 약 50.02%


같은 사람, 같은 계좌인데 1년에 한 번 보면 열에 아홉은 웃고, 매일 보면 거의 동전 던지기가 됩니다. 문제는 사람이 손실을 같은 크기의 이익보다 훨씬 아프게 느낀다는 점입니다. 매일 보면 하루 걸러 하루씩 아픈 날이 오는 셈이고, 그 아픔이 쌓이면 괜찮은 투자도 견디기 힘든 투자처럼 느껴집니다. 손실을 유독 크게 느끼는 마음은 92%의 선택 글에서도 다뤘습니다.

이건 실험으로도 확인됐습니다. 리처드 탈러와 대니얼 카너먼 등이 1997년에 발표한 연구에서, 투자 결과를 가장 자주 받아 본 그룹이 위험을 가장 적게 지고 돈도 가장 적게 벌었습니다. 정보를 제일 많이 가진 사람이 제일 못한 겁니다. 이번 주처럼 화면 속 숫자가 하루에 몇백 포인트씩 오르내리는 장에서는, 자주 보는 것 자체가 판단을 흔드는 재료가 됩니다.

 

내일 저녁엔 다시 열겠지만

그렇다고 앱을 지우겠다는 건 아닙니다. 내일 저녁쯤 월요일 장이 다가오면 아마 다시 열어 볼 겁니다. 안 본다고 시장이 멈추는 것도 아니고, 들고 있는 게 있는 이상 언젠가는 확인해야 합니다.

다만 오늘 하루로 알게 된 건 있습니다. 하루쯤 안 봐도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는 것, 그리고 안 보는 동안에야 비로소 "어떻게 키워 갈까" 같은 진짜 중요한 생각을 할 수 있었다는 것. 이번 주는 매일 화면에 끌려다녔는데, 앞으로는 일부러라도 이런 하루를 가끔 만들어 볼까 싶습니다.

 

월요일 아침이 오면 또 숫자에 마음이 흔들리겠죠. 그래도 오늘 하루는 숫자 없이도 잘 지나갔습니다. 이번 주 끝에 그거 하나 건졌으면 충분한 토요일이었습니다.

 

참고한 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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